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삼위일체 대축일
1. 말씀읽기: 요한3,16-21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17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18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삼위일체는 성부 하느님과 성자 하느님, 성령 하느님은 세 분이라 한 분이신 하느님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하느님께서 그렇게 계시니 나는 믿을 뿐입니다. 믿어야 이해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없다 해서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윤우와 용민이가 아프리카 정글 속의 아이들에게 컴퓨터 게임에 대해서 설명을 했습니다.
“얘들아! 컴퓨터 게임에 대해서 알려줄께…”
“그게 뭔데?”
“응! 컴퓨터로 하는 놀이인데 너무 재미있어!”
“컴퓨터가 뭐야?”
“컴퓨터는 모니터와 본체와 마우스와 키보드로 구성되어 있고, 인터넷에 연결 되면 세상 모든 곳을 볼 수 있어.”
“모니터는 뭐야?”
“모니터는 저렇게 사각형의 돌맹이처럼 네모다란데 거기에 게임이 나오는거야!”
“그럼 저 돌맹이가 컴퓨터야?”
“그게 아니라….”
“그럼 본체는?” “마우스는? “키보드는?”
“키보드는 글씨를 쓰는 건데 타자를 치면 컴퓨터가 모니터로 보여주고.”
“글씨가 뭔데? 타자는 뭐야? “타자를 친다고 하는데 치면(때리면) 아프다고 하는거야?”
“그게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아이 몰라. 나 안 할래.”
아직 게임은 설명도 안했는데 윤우와 용민이는 벌써 지쳐버렸습니다. 컴퓨터를 모르는 아이들에게 컴퓨터를 설명한다는 것. 참 어렵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을 설명하려면 더 어렵겠지요? 그리고 내가 이해 못한다 하더라도 하느님께서는 성부, 성자, 성령 세 위이시지만 한 분이십니다. 나는 믿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삼위일체를 설명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돌멩이가 모니터가 아니듯이 비유는 또 다른 어려움을 만들어 내게 된답니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가 생겨났습니다.
하루는 아우구스티노 성인께서 ‘삼위일체 교리를 어떻게 하면 잘 깨닫고 설명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바닷가를 산책하고 계셨습니다. 하루 종일 바닷가에서 생각에 잠겨 있는데, 한쪽 구석 백사장에서 아이들 세 명이 역시 하루 작은 게 구멍에 작은 조개 껍질로 바닷물을 퍼부으며 놀고 있었습니다. 성인께서 가까이 가서 아이들에게 물으셨습니다.
“애들아, 너희들 무엇을 하고 있어”
“저희들은 저 바닷물을 이 게 구멍에 모두 퍼 담으려고 합니다.”
성인께서 웃으시며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애들아, 너희가 죽을 때까지 해도 그 일은 못 끝낼 것이야.”
“그래도 선생님께서 삼위일체교리를 깨닫는 일보다 더 쉬울 거예요”
아이들은 이렇게 대답을 하고는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바닷가에서 돌아와 5시간 동안 삼위일체에 대하여 설명하였습니다. 결론은 이렇게 내렸습니다.
“자, 저는 지금까지 인간의 말을 총동원하여 성부, 성자, 성령께서 한 분의 하느님이시라는 삼위일체를 설명해 드렸습니다. 마지막 결론을 말씀드린다면 이것입니다. ‘삼위일체는 신비다.’”
제단의 초로도 삼위일체를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요? 초 몸통과 심지와 불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몸통을 성부 하느님으로, 심지를 성자 하느님으로, 불을 성령 하느님(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하시고…)으로 비유하여 설명한다면 좀 쉽지 않을까요? 각 위격이 서로 내어줌으로써 빛을 밝히는(세상을 사랑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느님! 내어줌을 통해 일치를 이루시는 하느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위일체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나 또한 내 것을 내어 주어 다른 사람들과 일치를 이뤄야만 하는 존재로서 생각해본다면 삼위일체를 좀 더 깊이 있기 쉽게 설명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초가 하느님이 아니니 이해하기는 더 어렵습니다.
삼위일체를 어떻게 믿나요?
삼위일체 하느님을 온전히 안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입니다. 삼위일체 교리가 하나의 신비로서, 계시로서 알려지는 진리이고, 계시를 떠나서는 인식이 불가능한 진리이기에 나의 이성의 이해 범위를 넘어선 것입니다. ‘계시로 주어졌다’ 하더라도 삼위일체의 신비가 남김없이 파악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 삼위일체에 대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믿고 고백하는 것 뿐입니다. 나는 큰 소리로 고백해야 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한분이신 하느님이십니다.
구원 역사 안에 나타난 삼위일체
구원의 역사는 한 분이신 하느님, 즉 성부, 성자, 성령께서 사람들에게 당신을 계시하시고, 하느님과 등진 사람들을 당신께로 돌아서게 하시고, 당신과 일치시키는 역사입니다. 신약의 백성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측면에서 하느님의 계시를 만났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하느님이심을,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체험하였습니다. 그리고 성령강림을 통해서 성령을 체험하면서 성령을 하느님으로 체험하였습니다. 즉 계시를 통하여 삼위의 하느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성부께서는 인류 구원의 영원한 계획을 세우시고, 성자를 지상에 파견하시어 인류를 구원하게 하셨고, 성령으로 하여금 사람들을 성화시켜 이 영원한 계획을 완성하십니다. 교회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일치 안에서 백성입니다. 그래서 미사 시작 때 “사랑을 베푸시는 하느님 아버지와 은총을 내리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시는 성령께서 여러분과 함께”라고 인사합니다. 성경 안에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위격을 살펴봅시다.
① 성부 하느님 :
이 세상 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시어 보살펴 주십니다. 인자하신 아버지로서 우리를 사랑 해주십니다. 구약의 백성들은 성부 하느님을 체험했습니다.
② 성자 하느님:
인간 구원을 위해 인간이 되시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아버지 하느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가르쳐주셨고, 하느님 나라에 대해 알려주셨으며, 참다운 인간의 길을 가르치셨습니다. 신약의 백성들은 성자 예수님께서 하느님이심을 체험했습니다.
③ 성령 하느님:
성령께서는 보호자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시며 무엇을 가르치셨고 어떻게 그 말씀에 따라 살아야 하는지 일러 주시고 이끌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게 굳은 믿음을 불러일으켜 주시며, 교회를 붙들어 보호하시어 구원에로 나아가게 만들어 줍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믿을 수는 있습니다. 믿음을 통하여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무는 내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질문 1: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성자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①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② 잘못한 이들에게 벌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
질문 2: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시어 무엇을 하셨습니까?
①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며, 하느님의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회개하고 하느님께로 돌아와 구원을 얻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② 하느님 백성을 돌보시며,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가르쳐 주셨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③ 몸소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희생제물이 되셨습니다. 세상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고, 삼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④ 당신의 몸을 생명의 양식으로 내어 주셨고, 믿는 이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셨습니다.
질문 3: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입니까?
① 믿음을 통해서 삶이 변화된 사람들입니다. 일상 삶을 기쁘게 살아가고, 언제나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② 친구들을 하느님의 자녀로 바라보고, 기쁘게 봉사할 기회를 찾습니다.
③ 주님의 은총 안에서 적극적으로 생활을 하며, 자신이 해야 할 일 앞에서 뒤로 물러나지 않습니다.
④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들을 지키려 하고,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가려고 합니다.
질문 4: 내가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낄 때는 언제입니까?
하느님께서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습니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두려운 분이 아니십니다. 하지만 내가 그분을 두려운 분으로 생각한다면 나는 그분께 가까이 갈 수 없습니다.
질문 5: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그들은 왜 예수님을 믿지 않을까요?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께로 향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이미 시작하여 맛보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믿지 않는 이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거부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선물입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조건 없이 베풀어 주십니다. 그 선물을 감사하지 않고, 오히려 모욕하거나 더럽게 여긴다면(믿지 않는 사람들) 하느님의 마음은 크게 아프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주시는 사랑에 감사하고, 그 사랑에 보답하는 삶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나는 하느님을 더욱 기쁘게 해 드릴 것이고, 구원의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게 됩니다.
질문 6: 하느님께서는 나를 사랑하십니다. 그렇다면 나는 하느님을 얼마나 사랑합니까? 하느님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하느님께서는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나의 구원을 위하여 몸소 인간이 되셨고, 십자가를 지시고 나를 위해 희생제물이 되셨습니다. 성령 하느님께서는 나를 이끄시어 믿음에로 초대하시며, 힘을 주시어 하느님 나라로 향하도록 몸소 보호하십니다. 삼위일체의 신비를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내가 받은 사랑에 감사하며 사랑받는 사람의 모습으로 살아갑시다. 이렇게 고백해 봅시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는 나를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나도 하느님을 사랑합니다.”
3. 정리해봅시다.
① 오늘 말씀 중에서 나에게 기쁨으로 다가오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왜 그 말씀이 기쁨으로 다가오고 있습니까?
② 나는 하느님의 사랑을 어떻게 느끼고 살아갑니까? 어떤 때 하느님의 사랑과 구원을 느낍니까? 내가 체험한 하느님의 사랑을 이야기 해 봅시다.
③ 신앙은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가득하지만 믿을 수 있은 것으로 가득합니다. 내가 믿고 있는 가톨릭 신앙을 이야기 해 보고, 믿지 못하는 친구들에게 나의 믿음을 이야기 해 봅시다. 나는 무엇을 믿고 있고, 믿지 못하는 친구들에게는 어떻게 말해주어야 할까요?
4. 실천사항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고 고백하고 하느님의 신비를 묵상하며, 주님의 구원에 감사하고, 성령의 이끄심에 온전히 맡기는 삶을 살아가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사항 정해보기
5. 말씀으로 기도하기
말씀으로 기도하기
하느님 아버지!
(기도는 하느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비로우신, 저희를 무한히 사랑하시는, 구원을 주시는···, 등으로 말씀에 감동받은 부분을 가지고 하느님을 부르며 기도합니다.)
저는 오늘 말씀 중에
라는 말씀이 가슴 깊이 와 닿았습니다.
(말씀 중에서 와닿는 말씀(감동, 기쁨, 사랑, 행복, 통회, 감사, 열정 등)을 한 구절 선택합니다. 그 말씀으로 전체를 바라보며 기쁨 속에서 기도합니다.)
저는
있습니다/되었습니다./~습니다.
(와 닿는 말씀을 통해 다가오는 기쁨과 행복, 사랑, 감사, 열정, 잘못한 것에 대한 성찰과 반성과 통회, 그 말씀에 비추어서 바라본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말씀드립니다.)
하느님 아버지!
(이제 결심을 하기 위해 하느님을 부르며 기도합니다.)
제가
하소서/ 주소서/~ 도록 강복하여 주십시오.
(말씀을 묵상하면서 실천사항을 2-3개 정하게 됩니다. 하느님께 그 결심(실천사항)을 말씀드리고, 그 결심이 행동으로 옮겨질 수 있도록 은총을 청합니다.)
(그리하여) 제가
하느님께는 찬미와 영광을 드리게 하소서.
(결심이 행동으로 옮겨질 때, 착한 행동과 사랑스러운 모습, 변화된 모습이 드러납니다. 그렇게 내가 변화되면 형제자매들에게는 작은 모범이 되고, 변화된 모습을 통해 하느님께는 찬미와 영광을 드리게 됩니다.)
삼위일체(안드레이 루블료프, 1425, 모스크바 트레챠코프미술관)
이 성화에서 성부의 무릎과 성령의 무릎이 마주 보고 있는데 이는 커다란 잔의 형상을 취하고 있습니다. 희생의 잔을 중심으로 삼위가 둘러 있는데 성자는 잔의 한가운데에 계십니다. 성자는 두 손가락으로 강생을 통한 신성과 인성을 겸비한 희생양이 되시는 당신의 사명을 암시하고 계시며, 왼쪽의 성부는 축복하시는 손짓으로 성자를 격려하고 계십니다. 그 반대편의 성령은 식탁 아래의 열린 사각형을 가리키며, 이 거룩한 희생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희생임을 말씀하십니다. 이 사각형은 동서남북의 모든 창조된 세상을 상징하고 있으며, 하느님의 집으로 가는 좁은 길, 즉 고통의 길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삼위는 똑같은 권위를 지녔음을 나타내는 권위의 지팡이를 들고 계시며, 모두 천주성을 뜻하는 푸른빛의 옷을 입고 계십니다.
이 성화는 우리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이콘으로 러시아의 안드레이 루블료프의 1425년 작품입니다. 1551년 스토슬라브 교회회의에서는 삼위일체를 그릴 때는 이 루블료프의 유형을 따르도록 규정하였습니다. 화가는 성삼위의 모습을 주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세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이야기(창세 18,1-15)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창세기의 이 장면은 아브라함이 자신에게 나타난 세 사람을 지극히 환대하는 모습이고, 주님께서 아브라함의 부인 사라가 아이를 가질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내용이지만 ‘삼위일체’ 성화에는 정작 아브라함의 모습은 없습니다. 천사의 형상을 하고 있는 세 사람이 식탁 위의 그릇에 담긴 음식을 중심으로 살짝 몸을 기울인 채 서로 부드럽게 바라보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 성화를 통하여 우리는 어떻게 해야 서로가 일치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고, 하느님의 크신 사랑이 어떠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 사랑을 받아들이는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온화한 마음을 내어주면서 일치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삼위일체의 신비 안으로 들어가는 삶입니다.